국가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오랜 세월 삭아 없어진 변재의 결 따라 남은 심재의 흔적에 무심히 매달린 거무튀튀 쇠붙이는 세월과 함께 삭았지만 여전히 같은 수종, 다른 쓰임의 틀과 문을 연결하는 중간자(中間者)의 역할을 자처한다.
   
결함과 부족함을 채워주고 사물과 사물의 사이를 이어주는 이 쇠붙이는 때로는 검소한 차림으로, 때로는 화려한 발산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낮아짐이 아닌 상생을 당당히 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 기운과도 같다.
두석(豆錫)은 장식기술에 사용한 전통적인 금속재료로 조선시대 문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두석을 만들기 위해 구리에 넣어 정련한 왜연에 대해서는 19세기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의 《오주연문장 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연(亞鉛)은 중국에서는 왜연이라 하고, 일본은 아연이라 부르는데, 이는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함석이라 칭하니 즉, 이것이 아연이다.” -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1770년
두석은 금과 은에 비해 값이 저렴하고 철에 비해 다루기 용이하면서도 색상이 매우 아름다웠다. 두석은 기물에 격조를 높이고 장식적 효과를 얻는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기물에 활용도가 높았던 금속재료 중 하나였다.
 
시간이 변화함에 따라 두석장이 단지 목가구의 장석을 만드는 장인으로 인식되어버렸고 전통사회에서 다양한 기물을 만들었던 두석장의 활동 영역이 턱없이 좁아져버렸다. 더욱이 급격한 서구화로 생활방식이 변화되면서 가구에 소용되던 각종 장석을 만드는 일조차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장인들의 작업장에 들어설 때면 반복되는 강한 망치소리에 경쾌한 장식이 시작된다. 조이질, 담금질, 망치질, 땜질, 줄질을 여러번 반복하여 노르스름한 빛깔의 금속 표면 위로 자유롭고 화려한 표현을 냄과 동시에 장인이 평생토록 지켜온 규칙과 절제는 소재를 다루는 오랜 세월의 축적된 지혜를 보여주어 존중감을 자아낸다.

두석 헤리티지는 장석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중요한 자원이었는지 알리기 위하여 장석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연구에서 시작하였다. 전통 목가구나 생활 용품의 기능성과 장식성을 높이고자 부착했던 금속제의 장식이었기에, 어딘가에 부착이 되는 평면적인 사물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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